추억과 기억

2015년 6월 4일 오전 9시.
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바램대로 성당에서 장례를 치루었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장례식장 시설이 성당내에 마련되있다고 한다.
가슴 아프고 슬펐지만, 처음 접해 본 성당에서 치루는 장례식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금은 위로도 받았다.

엄마가 왜 그렇게 카톨릭식으로 하려했는지 이해가 되었고, 종교가 없는 가족들에게도 좋은 선택으로 여겨질만큼
아빠를 아름다우면서도 경건하게 보내드리게 되어 안도감과 함께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소풍 온것만 같은 아름다운 날씨에 아빠를 보내드리는 동안 화장터를 나와보니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순간 자연의 아름다움에 슬픈 마음이 살짝 치유가 되는듯 하였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꾸며 놓은 것이겠지.
어린 조카들이 꽃밭으로 들어가 노는 것을 보니 산자에 대한 감정과 죽은자에 대한 감정이 교차하면서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고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있는 내 모습에 씁쓸했다. 
아빠를 모셔놓고 집으로 온 우리 가족들은 주말동안 쓰러져 자다가, 깨서 슬퍼하다가, 깔깔깔 거리며 웃다가, 
다시 슬퍼하다가, 웃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와 아빠의 유품을 정리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아빠의 짐을 정리하다 보니, 아빠가 끄적였던 메모들이 많아서 놀랬다. 
써놓은 시도 몇 편 있어서 놀랬다. 
어디에 좋다는 건강상식과 음식들에 대해 상당히 많이 메모해 놓은것, 유머나 좋은 글귀들을
조금씩 끄적여 놓은 것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왔다. 어떤날은 정성들여 썼는데 
어떤날은 또 메모한 글들이 힘들게 써내려간 듯한것이, 그때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서 미칠것 같았다.

아빠가 먹다 남긴 간식이 여전히 아빠 방에 있고 달력에 표시해 놓은, 이젠 돌아오지 못할 일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졌다. 
메모 해놓은 글들에서 아빠의 체취가 나는 듯하였다.

아빠 유품을 정리하면서 엄마를 위해 집 안 정리도 함께 했는데, 그러다가 20여년만에
어릴적 사진들과 편지들을 들쳐보게 되었다. 거기서 아빠는 통통하게 살 오른 젊은 모습에, 엄마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내 기억보다 많았다. 아빠 그때는 편안하고 행복했겠지...

유품이라곤 팔찌 하나와 뭐가 찍혀있는지 모를 아빠가 업무용으로 쓰던 작은 사진기 하나, 
아빠가 써놓은 노트 몇 권을 빼고는 아빠방에 있던 모든걸 버렸다. 소박하고 가난한 살림이였다.
낡기도 했지만 아빠가 쓰던 옷, 신발, 이불, 잡다구리한 것들, 서류들, TV, Video, Computer 뿐만아니라 생전에 아빠가
아끼던 물건들도 미련없이 모두 버렸다.

팔찌를 남동생이 만지작거리면서 자기가 사드린거라며 조용히 끼고 나간다.
사진기는 내가 챙겨왔다. 오늘 집으로 돌아와 뭐가 있나 보다가 또 한번 울컥.
아빠가 찍은 듯한 예쁜 꽃들, 풍경사진들, 행사 사진들 사이사이에 손주들 사진과 할머니와 애들이 노는 사진들, 
그리고 조카가 찍은 듯한 활짝 웃고 있는 아빠의 사진 한 장.
미치겠다....

몇년전 아빠가 나에게 말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 OO아..
그순간 생각했었다. 아마 내가 죽을때까지 이말은 기억하겠구나하고.

아픈 아빠를 보며 늘 마음의 준비를 하자며 형제들에게 말해왔던 나는
소식을 듣을때 고통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냉정함에 스스로 질렸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남동생은 차를 끌고 아빠 병원으로 가는동안 제대로 운전하며 간다했는데,
여기저기 스치며 지그재그로 갔었더라 한다.

아빠의 주검 앞에서 종일 비통하게 우는 남동생을 보면서, 그리고
학교에서 뒤늦게 알고 온 어린 조카녀석이 자식들보다 더 처절하게 울며
절 하면서 머리를 바닥에 박은 체 일어나지 못하자 지켜보던 어른들이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보던 나는 이것도 위로가 되는 것이, 이건 또 무슨 마음일까 싶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알고 있었던 아빠의 모습과 위로해 주는 분들이 기억하는, 몰랐던 아빠의
다정했던 모습에 또 한번 왈칵했다.  
나는 내가 보고싶은 아빠의 나쁜면만 보고 있었다.
난, 못된 딸이다.

아빠를 혼자 두고 와서 우리끼리 그랬다.
아빠가 잠깐 어디 여행가신 거 같은 느낌이라고, 곧 돌아오실 것 같다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환하게 웃으면서 손 흔들던 아빠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가슴이 미어터지겠다. 

이제야 알겠다. 
잊으려 하는것 보다는 그리워하는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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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인들 그렇겠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 더욱 명확해지더라.
어떤 사람들이 아빠를 진심으로 대했고, 어떤 사람들이 거짓으로 대했는지를.

특히 아빠의 형제들이 장례식장에서 아빠를 대하는 태도에는 어이가 없었다.

최소한의 에티켓도 없었다. 
장례식장에 붉은색 옷으로 풀 착장해서 온 작은아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심하다며 과자를 씹어대면서 
형님이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먹고 갔다며 엄마를 타박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질 않나, 
사촌애들은 철이없다하나, 하나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오고, 하나는 반바지에 스냅백을 쓰고 오질 않나, 
보다 못한 삼촌이 작은아빠에게 뭐라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거짓 울음을 쥐어 짜내던 고모는 (내가 평생 본적도 없는) 사촌들과 차라도 마시면서 친하게 지내야 되지 않겠냐며
친한척 하길래 내가 들은척도 안하니, 우리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엄마에게 계속 연락이 온다길래 
나는 엄마에게 대놓고 애들이 주기싫어한다고 말하라고 했다.

허세와 과시에 쪄든 인간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하는 것이라곤 세워진 화환을 꼼꼼히 읽어대고, 
가족 묘지에 아빠 안모신다고 뭐라하며 어떻게든 엄마를 깍아내리려 하고, 
시간 맞춰 밥먹고는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간다. 
지끔껏 우리하고 말도 안섞고 무시하던 고모들이 이제와 다정한척 한다. 
한 분은 (사촌)고모인줄도 몰랐다 나는.


많은 분들이 아빠와의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 주는 것도 너무 감사했고,
이럴때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 주시던 분들을 보면서 눈물나도록 감사했다.
내마음 깊은 곳까지 헤아려 주는 친구에게도 고마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머를 잊지않는 유쾌한 나의 형제가족들에게도 고맙다.

어떻게 살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by 시리작가 | 2015/06/12 03:41 | 일상으로 따라가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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